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7년 8월 22일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영국의 리즈대학에서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피실험자 그룹에게 넓은 실내에서 아무런 목적 없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말이나 몸짓을 주고받지 말고 그냥 걷기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연구팀은 사전에 이미 일부 피실험자들에게 어느 방향으로 걸어야 하는지 세부적인 지시를 내렸었지요. 그렇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모든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방향을 알고 있는 몇몇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더라는 것입니다. 인간도 양이나 새처럼 소수의 개인을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면서 무리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실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보를 지닌 개인’이 단 5%만 있어도 200명에 이르는 군중들의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나머지 95%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정보를 지닌 개인이 이끄는 무리를 따라간다는 것이지요.
이 실험 내용을 보면서 왜 전체 인구의 10% 이상이 되는 가톨릭 신자들이 세상에 영향을 못 미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들이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간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주님께서 제시하는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 안에서 죄악이 가득한 이유는 10% 이상이 되는 가톨릭 신자들이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주님의 뜻은 세상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돈이나 명예 등을 좇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당신의 십자가 희생으로 보여주신 사랑을 향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통해서도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시지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처럼 생활할 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문제는 신앙인이라고 말하는 사람 스스로가 이러한 삶은 불가능한 삶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이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합니다. 나의 행동 하나가 많은 이들에게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실제로 많은 성인 성녀의 삶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까? 그런데 ‘나는 성인 성녀가 아니야.’라는 단호한 결정으로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길 자체를 차단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나의 작은 행동 하나도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하겠습니까?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는 영향, 하늘 나라에 함께 들어갈 수 있는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살아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텅 빈 가슴은 물질로는 절대로 채워지지 않아요. 가슴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저절로 채워지죠(김상운).
성공의 의미
독일인 의사이자 작가인 에카르트 폴 히르슈하우젠은 ‘성공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성공’으로 정의하는 것은 우리의 나이와 상당부분 관계가 있습니다. 인생은 돌고 돕니다. 한 살짜리 아기의 성공은 대소변을 가리는 것이고, 25세에는 성행위, 50세에는 돈이 성공이며, 75세에는 여전히 성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 그리고 90세에는 다시 대소변을 가리는 것이 성공입니다.”
인생은 돌고 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정말로 성공이란 것이 별 것 아닐 수 있다 싶습니다. 걷는 것, 대소변 가리기, 성행위, 돈 벌기,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등등 이 모든 것들이 결국 별 것 아닌 것이 되지 않을까요?
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주님께서 인정하는 성공을 따라가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