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호호글라라 2017. 9. 2. 10:36

2017년 9월 2일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어떤 분께서 열심히 성당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자매님께서 암 투병 중이라는 말을 듣고는 친한 친구와 함께 찾아갔습니다. 병문안을 가면서 이 둘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이 자매님께서 왜 이런 병에 걸렸는지, 얼마나 지금 불행하다고 느낄지, 또 열심히 성당에서 봉사까지 했는데 왜 이런 몹쓸 병에 걸렸는가 등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병실에 들어서는 순간, 환자복을 입고서 누워계셨던 자매님께서 벌떡 일어나서 밝게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환자 같지 않게 너무나도 밝게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솔직히 지금 병으로 힘들기 때문에 혹시라도 이러한 병을 주신 하느님을 원망하면서 우울해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들의 예상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지요. 오히려 “누구 힘들다고 하던데, 지금은 어때요?”라면서 다른 분을 염려하고 걱정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병문안을 간 자매님들의 말씀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경청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습니다.

 

이 순간, 한 자매님께서 갑자기 무엇인가가 이 분과 겹쳐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주님 같았습니다. 그리고 대화를 계속 하면서 ‘주님과 함께 하니, 어떤 것도 다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구나. 그래서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들은 인간적인 판단을 앞세울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저 사람은 불행할거야.’, ‘저 사람은 힘들 거야.’, ‘저 사람은 위로를 받아야 할 상황이야.’ 등등의 인간적인 판단으로 섣부르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한다면 인간적인 판단은 완전히 역전이 될 수 있습니다. 불행처럼 보이는 상황이 행복이 될 수 있으며, 힘 들 수 있는 상황이 기쁠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위로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줄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탈렌트의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종들에게 다섯 탈렌트, 두 탈렌트, 한 탈렌트를 주고서 떠나는 주인이지요. 그리고 나중에 주인이 돌아왔을 때에 각자 받은 탈렌트로 어떻게 했는지를 보고 합니다. 모두가 두 배로 벌어들였지만,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만이 땅에 숨겨 두고 주인에게 그대로 한 탈렌트만을 드립니다. 두 배로 벌어들인 종에게는 칭찬을 하지만, 처음에 준 그대로 가져 온 종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말하면서 심하게 꾸짖습니다.

 

처음부터 똑같이 주셨으면 이러한 상황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이 비유를 통해, 주님께서는 인간의 생각이나 인간의 기준에 따라 나눠주시는 분이 아님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주님께 받은 것을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앞서 병으로 힘들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는 자매님이지만 불평불만을 넘어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께 받은 것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착하고 성실한 종의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우리 역시 이러한 착하고 성실한 종의 모습을 갖춰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자신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굳세게 밀고 나가라(로잘린 카터).

 

 

같은 일, 전혀 다른 삶(‘따뜻한 하루’ 중에서)

  

어느 날 공자가 조카 공멸을 만나 물었습니다.

“네가 벼슬한 뒤로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이냐?”

공멸은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대답했습니다.

“얻은 것은 없고 잃은 것만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 나랏일이 많아 공부할 새가 없어 학문이 후퇴했으며, 둘째, 받는 녹이 너무 적어서 부모님을 제대로 봉양하지 못했습니다. 셋째, 공무에 쫓기다 보니 벗들과의 관계가 멀어졌습니다.”

공자는 이번엔 공멸과 같은 벼슬에서 같은 일을 하는 제자 복자천을 만나 같은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복자천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잃은 것은 하나도 없고, 세 가지를 얻었습니다. 첫째, 글로만 읽었던 것을 이제 실천하게 되어 학문이 더욱 밝게 되었고, 둘째, 받는 녹을 아껴 부모님과 친척을 도왔기에 더욱 친근해졌습니다. 셋째, 공무가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어 우정을 나누니 벗들과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같은 일을 하고 있어도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인다고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먼저 바라보는 우리입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마음을 먹고 살아가느냐가 바로 나의 삶을 결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