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7년 9월 4일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제게 어떤 자매님 한 분이 상담을 요청하셔서 꽤 오랜 시간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좀처럼 상담이 진행되지 않는 것입니다.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도는 이야기만 계속되다 보니 그분과 저 모두 지칠 수밖에 없었지요. 저의 부족함 때문인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고 다른 신부님 한 분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이 신부님께서는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시고 또 말씀도 잘 들어주시는 분이시거든요.
얼마 뒤에 이 자매님께서 다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소개해 준 신부님을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눴지만 별로였다면서 다시 상담을 부탁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분께서는 스스로의 변화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변화를 원한다고는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진심으로는 원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상담을 들어주는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는 생각하십니다. 과연 가능할까요?
‘주님께서 ~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청원기도를 하시는 분들을 많지요. 그러나 스스로의 변화를 위한 노력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바람이 이루어질까요? 이런 유머가 생각납니다. 어떤 사람이 늘 주님께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제가 얼마나 힘든지 아시죠? 그러니까 로또 복권에 딱 한 번만 당첨되게 해주세요.”
그런데 이 기도를 계속해도 주님께서는 단 한 번도 들어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망을 담아서 이렇게 기도했지요.
“주님, 어떻게 제 기도를 외면하십니까? 기도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에게는 많은 축복을 주시면서,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는 저에게 로또 복권 한 번 당첨시켜주는 것이 그렇게 어렵단 말입니까?”
바로 이 순간에 이러한 소리가 들렸다고 하지요.
“그러니까 먼저 로또 복권을 먼저 사라니까!!”
우리 역시 이런 모습으로 살아갔던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고향인 나자렛의 한 회당에 들어가셔서 하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그런데 고향사람들이 이 모습을 좋게 보지 않습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라면서 별 볼 일 없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것이지요. 심지어 자신들을 무시했다면서 벼랑 끝으로 데리고 가서 떨어뜨릴 생각까지 하지요. 이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변화되지 못하기 때문에 아주 가까이에서 하느님의 아드님을 뵙고 말씀까지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걷어 차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변화하지 않는 사람들과 주님께서는 함께 하실까요?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이,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십니다. 우리를 떠나시지 않도록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되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그저 사랑. 사랑, 사랑일 뿐이다. 때로는 그게 인생이다(커트 보니것).
사제는 덕행과 선행이 뛰어나야 한다.
“사제는 겉으로나 안으로나 거룩하고, 덕행도 선행도 뛰어나야 한다. 사람들이 사제를 존경하는 만큼 사제는 존경받을 만해야 하고, 사람들이 사제를 신뢰하는 만큼 사제는 신뢰받을 만해야 한다. 사제가 겉으로만 겸손하다면 사람들은 사제를 따르는 척하고, 사제가 진심으로 겸손하다면 사람들은 사제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제가 성인처럼 겸손하다면 사람들은 사제에게 무릎을 꿇는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이라는 영광스러운 상속을 받았으니, 이 상속을 받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흠 없이 이 상속을 물려주어야 한다.”
어제 영적독서를 읽다가 보게 된 구절입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변화되지 못했던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됩니다. 그냥 ‘사제’라는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다보니 덕행과 선행에도 소홀했던 제 자신이었음을 크게 뉘우치게 됩니다.
20년 가까이 사제로 살아가면서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더 깊이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처음에는 멋도 모르게 고개를 뻣뻣하게 세우고 살았었거든요.
이 땅에 많은 겸손한 사제가 나올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