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성모님을 공경하는 이유
9월 8일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우리가 성모님을 공경하는 이유
교회 전례력을 한번 살펴보니 많이도 아니고 딱 세분만이 탄생일을 기념하고 경축하고 있더군요.
예수님, 세례자 요한 그리고 성모님입니다.
그만큼 성모님의 탄생은 하느님 구원 역사 안에 큰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한때 생일날 친구들끼리 모여 케이크에 점화된 불을 끄고 나서 “생일 축하 합니다!”라는 노래 후에 장난삼아 “왜 태어났니?”라고 가사를 바꿔 부르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런 면에서 정말이지 성모님의 탄생은 우리 인류를 위해 크게 감사할 일입니다.
선물 같은 탄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신의 탄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 구원사업의 서곡이 울려 퍼졌기 때문입니다.
온 세계가 성모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오늘 나의 출생은 세상 사람들 앞에 어떻게 비춰질까 걱정이 됩니다.
나란 존재의 출현이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선사하는 축복이 아니라 민폐요 괴로움의 원천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곰곰이 성찰해봅니다.
교회 전례 안에서 성모님처럼 많은 기념일과 경축일을 지닌 성인성녀는 다시 또 없습니다.
원죄 없이 아들 예수님을 잉태되심을 축하합니다.
십자가 아래서 고통당하신 사건을 기억합니다.
영광스럽게 승천하신 날을 또 기념합니다.
물론 선물처럼 다가온 탄생일을 경축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회는 매주 토요일 성모 신심미사를 봉헌하며 성모님을 생각합니다.
조금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성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른 무엇에 앞서 그분은 너무나도 탁월한 신앙인으로서의 모델이요 이정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모님을 공경하는 이유는 특별한 기적을 되풀이하는 능력의 여신(女神)이어서가 절대 아닙니다.
우리의 잡다한 소원들을 원 없이 채워주는 완벽한 해결사여서도 아닙니다.
우리를 황홀한 신비로 이끌어주시는 묘한 분이어서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성모님의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신앙을 칭송합니다.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도 하느님 아버지의 뜻만을 추구했던 빛나는 믿음을 찬양합니다.
한결같은 자세로 아버지의 뜻만을 추구했던 충실성을 공경합니다.
예수님을 잉태하셨을 뿐 아니라 동시에 하느님의 말씀을 잉태하신 분이기에 존경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자신 안에 성장할 수 있도록 늘 자신을 비워냈던 분이라서 사랑합니다.
성모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도 약간의 정화와 쇄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성모신심은 단독 교과목처럼 따로 분리시켜놓아서는 안됩니다.
언제나 그리스도론과 결부시켜야 바람직합니다.
성모님 공경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이루어져야합니다.
성모신심과 관련해서 항상 경계해야 할 위험요소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지나치게 포장되고 과장된 성모신심입니다.
조금은 두렵고도 부담스러운 성모님 관련 신심서적들입니다.
엄청나게 섬뜩한 성모님 관련 사적 메시지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성모님에 대한 지나친 신격화도 배제해야 마땅합니다.
원래 성모님께서는 너무나 편안하고 다정다감한 분, 순수하고 겸손하신 분이었습니다.
인정 많고 자상한 우리 어머니 같은 성모님이신데, 그분 위에 너무 심하게 도금(鍍金)을 해놓았으니 성모님께서 얼마나 불편하실까 걱정도 많이 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성모님을 자동판매기나 기적의 요술방망이 같은 존재로 여기고 끊임없이 뭔가를 집요하게 졸라대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인류에게 남겨주신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신 모습입니다.
하느님의 초대에 흔쾌히 ‘예!’라고 응답한 것입니다.
성모님의 가장 큰 업적은 한 평생 하느님의 말씀을 잘 경청했고, 그 말씀을 마음 속 깊이 간직했고, 그 말씀을 매일의 삶 속에서 꾸준히 실천하신 것입니다.
참된 성모신심은 철저하게도 그리스도 중심적입니다.
참된 성모신심의 소유자는 기적이나 발현, 계시 등에 집착하거나 연연하지 않습니다.
대신 참된 성모신심의 소유자는 부단히 성경 속의 성모님을 바라봅니다.
겸손하고 순수하신 성모님, 때로 강인하고 깊은 믿음의 소유자였던 성모님의 생애를 묵상합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