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호호글라라 2017. 9. 15. 09:39

2017년 9월 15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통풍에 걸려서 고생이 심했다는 신부님을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그런데 통풍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소문과는 달리, 전보다도 더 건강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프다고 하더니, 얼굴이 너무나 좋아 보이는데요?”

신부님께서는 통풍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고 음식조절을 하면서 규칙적으로 식사를 한답니다. 그리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다 보니 아주 건강해졌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통풍이 오히려 자신에게는 큰 선물이었다고 합니다. 좋아하지 않는 술자리에 억지로 갈 이유가 없어졌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니 항상 기분이 좋답니다.

이 신부님에게는 병이 오히려 선물이 된 것 같습니다. 병 자체는 고통이지만, 고통을 주는 병 때문에 건강이라는 선물을 얻게 된 것이지요.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과 시련도 선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보다 더 올바르게 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통과 시련을 선물로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통과 시련은 내게 반드시 없어져야 할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고통과 시련이 제발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과 시련 자체에 문제가 아니라, 어떤 마음을 품고 사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오늘은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함께하신 성모님의 고통을 기억하는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성모님의 고통을 떠올려보십시오. 결코 작은 고통이 아닙니다. 젊어서 부모보다 먼저 자식이 죽는 경우를 가장 큰 불효라면서 ‘악상(惡喪)’이라고 표현합니다. 왜냐하면 부모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모님의 고통은 가장 큰 고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고통이 단순히 고통으로 끝났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모님께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하셨고,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성모님에게 많은 자녀들을 갖게 하였고, 우리들은 끝까지 우리의 편이 되시는 어머니를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성모님께서는 가장 큰 고통을 직접 몸으로 겪으셨기에, 우리의 아픔에 대해 가만히 있지 않으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과 시련은 우리들에게 늘 걸림돌로 다가옵니다. 더욱이 우리의 나약함으로 인해 고통과 시련에 주저앉게 될 때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십자가의 길을 함께하신 성모님을 떠올렸으면 합니다. 그리고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십시오. 우리의 어머니께서는 분명히 우리의 기도를 받아서 주님께 직접 전해주십니다.

 


오늘의 명언: 고통을 겪고 나면 인생과 친구와 자신을 재발견하는 행복이 다가오는 법이다.(해럴드 블룸필드)

  

 

지금에 충실함 

 

어떤 사람이 도가 깊은 선승에게 영성수련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선승이 말했습니다.

“앉아 있을 때에는 앉아 있고, 서 있을 때에는 서 있으며, 길을 걸을 때에는 걸으면 되지요.”

이 말을 듣고 질문을 던진 사람이 항의를 했습니다.

“그건 모두가 하는 일이라 특별한 것이 없잖아요.”

선승은 다시 말합니다.

“아니,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앉아 있으면서도 서 있을 때를 생각하고, 서 있을 때에는 벌써 걸을 것을 생각하지요. 길을 걸을 때에는 직장 일이나 식사 등 다른 일을 생각하고 있죠.”

정말로 그렇지 않습니까? 온전히 지금이라는 시간에 충실하지 못하고 과거에 연연하고 미래를 걱정만 하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지금에 충실한 사람이 바로 하느님과 함께 걷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시간은 지금이라는 이 순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