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호호글라라 2017. 10. 17. 08:50

2017년 10월 17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어떤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부부가 아이 둘이나 낳고 살면서 사랑이 변하지 않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이를 기적이라고 하거나 아니면 억지로 지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제가 결혼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시더군요. 맞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삶 안에서 얼마나 많은 예외가 있습니까? 세상에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으며, 누구나 그 있을 수 없어 보이는 일의 주인공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 몇 번의 경험만을 통해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확신한다면 분명히 어리석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사랑이란 가장 많은 예외를 만들어내는 통로이기 때문에 결코 지례짐작으로 삶의 주인공이 될 기회를 날려버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참으로 많이 우리들은 그 주인공의 길에서 멀어집니다. 불가능하다면서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배신을 당하기 때문에 함부로 사랑을 행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또한 다시는 사랑할 수 없다면서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봅니다.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손해 보는 길을 선택 하냐면서 사랑의 실천은 특별한 사람의 일처럼 간주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포기하기 때문에 있을 수 없어 보이는 일의 놀라운 주인공이 되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하신 사랑의 말씀들, 우리에게 하신 명령의 말씀들이 도저히 실천하기 불가능한 것일까요?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하다고 포기할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가 삶 안에서 주인공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당신의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놀라운 표징들이 우리 안에서 계속해서 이루어지길 바라고 계십니다. 그래도 불가능하다고 또 틀렸다면서 주님의 뜻과 정반대의 길로 가시겠습니까?

 

바리사이를 비롯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늘 주님과 반대의 길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손을 씻지 않는다면서 깜짝 놀라고 손가락질도 했겠지요.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이 모두가 아님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루카 11,39-40)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 깨끗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진실로 깨끗한 삶,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의 삶뿐입니다. 이 사랑의 삶을 통해서만 주님께서 맡겨주신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편견을 버린다는 것은, 그것이 언제일지라도 절대로 늦지 않다(H. D. 도로우).

 

 

아빠와 동물원

  

가족이 함께 동물원에 갔습니다. 그곳에는 참으로 희귀한 동물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들이 자꾸만 보는 동물마다 사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희귀한 동물을 구하기도 힘들겠지만, 어떻게 집에서 동물을 키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동물을 기울 수 없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내가 키울게.”라고 말할 테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동물을 사도 먹이를 구할 수가 없어. 이 동물들은 특별한 것을 먹거든.”

이 말에 시무룩해 하면서 가족과 함께 계속해서 동물원 구경을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기뻐하면서 코끼리를 가리키면서 사달라고 조르는 것입니다.

“아빠, 저 코끼리 사줘. 저것은 먹이 안 구해도 될 것 같아.”

코끼리가 먹이를 먹지 않을까요? 평균 5~7톤 정도 되는 코끼리는 매일 150Kg 정도의 식물을 먹어치웁니다. 따라서 아들의 이 말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왜 안 구해도 되니?”라고 묻자 무엇인가를 가리키며 말합니다. “아빠, 저것 봐요. 코끼리 우리 앞에 ‘먹이 주지 말 것!’이라고 쓰여 있잖아요.”

‘먹이 주지 말 것’의 의미가 먹이를 먹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아니지요. 관람객들이 하도 먹을 것을 주다보니 주지 말라고 적어놓았을 뿐입니다. 하지만 쓰여 있는 것만 보고서 그렇게 판단했던 것이지요.

우리 역시 눈에 보이는 대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그 안에 담겨 있는 의미, 특히 사랑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분명히 가장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