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호호글라라 2017. 11. 15. 13:13

2017년 11월 15일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할리우드 원조 섹시 스타라고 불리던 샤론 스톤(Sharon Stone)을 아마도 웬만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잘 아실 것입니다. 아름답고 화려한 삶을 살았던 그녀가 2001년 뇌출혈로 쓰러지게 되지요. 다행히 응급수술로 목숨은 건졌지만 말을 더듬게 되었고 다리를 절며 시력이 떨어지는 후유증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연기도 할 수 없게 되었고, 그 결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갔습니다. 물론 일상 삶 역시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지요. 이러한 상태에서도 샤론 스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뇌출혈로 쓰러진 뒤의 제 모습은 태어나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저입니다. 그래서 한 번도 써보지 못했던 내 마음을 쓰고 싶습니다.”


처음 겪게 되는 고통과 시련의 시간에 절망하고 아파합니다. 심지어 죽음까지 선택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봅니다. 그런데 샤론 스톤은 그러한 고통을 겪는 나 역시 ‘나’라는 것을, 그래서 처음 겪게 되는 이 새로운 나를 받아들인다는 것이지요. 그 결과 이제 더 이상 배우의 삶을 살 수 없다는 선고를 받았음에도 이를 극복해서 다시 TV 드라마로 재기에 성공합니다.

 

고통과 시련을 겪고 있는 그 순간에 절망하고 아파하는 것에 집중한다면 분명히 불평불만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과 시련을 겪는 나 역시 ‘나’라는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긍정적인 마음으로 매 순간을 감사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나병 환자 열 사람을 고쳐주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깨끗해진 몸이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다시 예수님께 돌아온 사람은 딱 한 사람, 그것도 이방인이라는 말을 들었던 사마리아 사람 한 명뿐이었습니다. 왜 깨끗해진 나머지 아홉은 돌아오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를 고민해 봅니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건강해진 자신의 모습을 먼저 보여주고 싶어서 그랬을지 모릅니다. 다시 나병의 상태로 돌아갈 것 같아서 계속 괜찮은지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치유되었다는 기쁨에 감사를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수도 있겠지요. 또 치유 받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가지 않아서 자신 역시 가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나병 걸렸을 때의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 싫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즉, 나병 걸렸을 때의 모습을 기억하기 싫어서 심지어 자신을 고쳐주신 예수님께도 찾아가지 않았던 것이지요. 하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달랐습니다. 그에게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주님께 돌아가 감사를 드려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나병 걸렸을 때와 치유되었을 때의 모습 모두를 인정했기 때문에 주님을 찾아가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고통과 시련 안에서도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은 그 고통과 시련을 겪는 나 역시 인정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한 긍정적이고 희망을 간직한 사람만이 믿음을 갖게 되고 이 믿음이 자신을 살릴 수가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열린 출구는 단 하나밖에 없다. 네 속으로 파고 들어가라(에리히 캐스트너).

 

 

행복한 사람은 얻은 것만 셉니다(‘좋은 글’ 중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같은 하루를 보내면서도... 어떤 사람은 불행에 빠져 생활하고... 어떤 사람은 행복에 겨워 생활합니다.​ 이유는 한 가지​ 세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불행한 사람은 잃은 것을 셉니다. 이것도 잃고 저것도 잃었다고 셉니다. 잃은 것을 셀수록 감사함도 잃게 됩니다. 잃은 것을 셀수록 만족감도 잃게 됩니다. 잃은 것을 세는 만큼 행복이 비워집니다.​

행복한 사람은 얻은 것만 셉니다.​ 이것도 얻고 저것도 얻었다고 셉니다. 얻은 것을 셀수록 감사함도 얻게 됩니다. 얻은 것을 셀수록 만족감도 얻게 됩니다. 얻은 것을 세는 만큼 행복이 채워집니다.​

잃은 것은 빨리 잊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이든... 재물이든...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든...​

모든 사고는 관점의 차이입니다.

잃은 것만 세는 어리석은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얻은 것을 셀 수 있는 지혜로운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