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호호글라라 2017. 11. 21. 09:33

2017년 11월 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어렸을 때의 제 모습을 떠올려보면 숫기도 없고 또 자신감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 역시 자신 있게 할 수가 없었는데, 그러다보니 누구에게 말을 거는 것 역시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이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지요. 소위 짝사랑이라는 것을 하게도 됩니다. 숫기 없는 저였지만 저 역시 이성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마음에 드는 아이가 생겨서 짝사랑도 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마디의 말도 걸어보지 못한 채 마음 앓이만 했습니다. 그 아이의 앞에만 서면 얼굴이 벌겋게 되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더군요. 어떻게든 관심을 끌어보려고 기타도 배워보았지만 좋아한다고 말 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친한 친구들에게도 그런 말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의 친구들은 신학교까지 들어간 제가 이성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줄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사제로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것 역시 성소라고 하면 성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데 우연히 옛날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벌써 30년 전의 사진입니다. 이 사진 속에는 제가 짝사랑을 했던 여자 아이가 있더군요. 사진 속의 이 아이를 유심히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패션이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당시 입고 있는 옷과 머리 모양 등이 왜 이렇게 어색하게 보이는지 모르겠더군요. 또한 그렇게 예쁜 얼굴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마음을 두고 관심을 가졌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시간에 따라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변하는 것이 아닐까요? 미녀의 기준 역시 그렇다고 하지 않습니까? 세계 역사를 바꿀 수 있을 정도로 동서양을 대표한다는 절세미인 양귀비, 클레오파트라가 지금의 미녀상과 비교하면 아주 볼품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과 판단이 무조건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변화되는 세상의 기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변화지 않는 주님의 기준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가족이 찾아오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하십니다. 세상의 기준은 혈연관계를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얼마나 잘 따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기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을 실행해 나갈 때, 우리는 세상의 기준에서 차츰 벗어나 주님의 기준을 따르는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과의 특별한 관계 안에서 참 행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삶의 진정한 길은 순간순간을 낭비하지 않는 기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기적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되풀이되지 않습니다(마가렛 제임스).

 

 

감사하는 습관

  

어느 군대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그 날은 저녁식사 반찬으로 돈가스가 나오는 날이었습니다. 병사들이 식당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알고 보니 돈가스를 1인당 2개씩 나누어 준다고 하여 신이 난 것이었습니다.

병사들은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소스가 없다는 이야기에 이내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부식 담당 병사가 실수로 돈가스 한 상자와 소스 한 상자가 아닌 돈가스 두 상자를 가져온 것입니다. 여기저기 병사들의 불평이 들렸습니다.

"맛도 없게 소스도 없이 돈가스만 2개를 먹으란 말이야?"

그때 한 선임병이 말했습니다.

"다들 그만 불평하자. 분명히 어떤 부대에서는 지금쯤 돈가스 없이 소스만 2인분 먹고 있을 거야."

우리에게도 많은 선택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불평과 감사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는 것, 조금만 생각하면 너무나도 많은 감사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평만을 바라보면 세상의 어떤 것도 불평의 이유가 됩니다. 그렇다면 불평과 감사 중에 무엇을 선택하는 사람이 행복할까요?

행복은 내가 선택할 수 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