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호호글라라 2017. 9. 29. 09:29

2017년 9월 29일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제2차 세계대전 때에 유대인 절멸을 위해 지어진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잘 아실 것입니다. 이 수용소에서 자그마치 250만~400만 명의 유대인들이 살해되었지요. 그런데 이 수용소에서 성탄과 새해 사이가 되면 사망자가 급격하게 늘어났다고 합니다. 나치에 의해 살해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가혹한 노동조건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갑작스러운 전염병이 돌았기 때문일까요? 살해된 것도 아니고, 병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때가 되면 사람들이 힘을 잃고 자리에 누워서 죽어갔답니다.

 

‘성탄이 되면 집에 돌아갈 수 있겠지.’, ‘새해가 되면 풀려나갈 수 있겠지.’라는 희망에 매달려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수용소의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성탄이나 새해가 되면 풀려나갈 것이라는 소박한 희망을 만들었던 것이고, 이 실낱같은 희망이 사라지자 생체시계 조차 멈춰버린 것이지요.

 

희망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절망으로 변할 수 있는 희망은 과감하게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희망은 전혀 변할 수 없는 가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절망으로 급변할 수 있는 희망을 쫓고 있습니다. 돈, 명예, 사회적 지위 등을 말이지요.

 

그렇다면 진정으로 변하지 않는 희망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주님께서는 당신께만 희망을 두라고 하십니다. 절대로 변하지 않는 분으로 참 희망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 같으랴.’,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사람, 영웅, 힘’, 라파엘은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라는 뜻이라고 하지요. 이 뜻에 맞춰서 대천사들은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 주는 조력자이자 파견자, 치유자로서 우리들에게 다가옵니다. 곧 희망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나타나엘은 사실 처음에는 예수님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나자렛’이라는 촌구석에서 큰 인물이 나올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필립보의 제안을 따라 예수님을 보는 순간, 이 분이야 말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만나기도 전에 이미 자신을 모두 꿰뚫어 보고 계셨기 때문이었지요.

 

우리를 모두 꿰뚫어 보고 계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유일한 희망을 당연히 주님께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대천사들까지 파견하시지 않습니까?

 

어디에 희망을 두고 있습니까? 절망으로 변할 수 있는 희망이 아니라, 절대로 변하지 않는 희망을 주시는 주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주님이야 말로 진정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오늘의 명언: 희망은 좋은 소식이 나쁜 소식보다 우세한지 계산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희망이란 그저 행동하겠다는 선택이다(안나 라페).

 

 

희망을 품어야 인생이 즐거워집니다. (최규상의 아침편지 중에서)

  

한 젊은이가 지혜로운 노인에게 물었지요.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합니까?”

노인의 대답은 딱 한마디!

“응.. 인생이 딱 한 번인 것처럼 살아.”

힘들어도 한 평생. 즐거워도 한 평생. 결국은 늘 선택의 문제. 그런데 적당히 살아보니... 삶이 힘들어도, 행복할 수 있더군요. 조금 아프고 불편하고 불만족스럽다고, 냅다 "내 인생은 불행해"라고 하지 않고, 그 아픔 속에서 희망을 키워내는 것.

목련꽃이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것은 꽃봉오리 하나씩 희망을 키워가며 봄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그들은 겨울을 단순히 버티는 게 아니라 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희망하나 품어야 딱 한번뿐인 인생이 즐거워집니다.

'당신의 마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0) 2017.10.01
천국으로 오르는 사다리  (0) 2017.09.29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0) 2017.09.28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0) 2017.09.28
묵주기도 빛의신비  (0) 2017.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