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0주간 수요일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마태 20:1-16)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짝사랑
사랑 중에 참으로 가혹한 사랑이 있습니다. 바로 ‘짝사랑’입니다.
‘이쪽’에서는 비록 드러내놓고 표현은 못하지만 ‘저쪽’을 향한 간절한 사랑으로 밤잠을 설칩니다.
때로 하루 온 종일, 일 년 내내 아무 일도 못하고 애를 태웁니다.
참다못해 다양한 방법과 별의 별 수단을 다 동원해 불타는 사랑의 시선을 보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 쪽’에서는 그런 분위기조차 파악하지 못합니다.
도대체 왜 그러나, 하는 표정입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사랑, 안타까운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 인간 각자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그렇습니다.
하느님 쪽에서는 우리 각자를 향한 절절한 사랑, 우리 각자를 향한 뜨거운 사랑을 지속적으로 보내는데, 우리 측의 아주 작은 응답이라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계시는데, 우리 측에서는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랑이 오는지 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하느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정말 미칠 지경입니다.
우리 측의 아주 작고 미세한 응답이라도 간절히 기다리시는 하느님 앞에 때로 너무나 냉랭한 우리는 해도 해도 너무한 불효자식들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끝도 없는 짝사랑, 해도 해도 너무한 사랑을 잘 그리고 있습니다.
단 한명도 빠트리지 않고 마지막 한 명까지도 구원하시겠다는 하느님의 적극적인 구원의지, 보편적 사랑이 돋보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은 정말 끝도 없습니다.
우리 인간 측의 무관심, 냉랭함 앞에서도 조금도 개의치 않으십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마지막까지 기회를 주시며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정녕 대단한 사랑, 경탄할만한 하느님 사랑입니다.
한 훌륭한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자녀들을 위해서라면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서 오로지 일편단심 자식들만을 위해 뼈 빠지게 일했습니다.
비록 많은 시간 자녀들과 함께 하지 못했지만 자신의 삶은 오직 자녀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저 묵묵히 최선을 다해 자녀들을 뒷받침해줬습니다.
솔직히 자녀들이 결혼하기 전까지는 이런 아버지의 사랑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을 낳아 기르는 과정에서 자신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과 헌신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어렵사리 아버지께 감사의 전화를 드렸답니다.
아들로부터 그 전화를 받은 아버지는 너무나 행복한 나머지 밤잠을 못 이루셨다고 합니다.
돈 드는 일도 아닌데 앞으로 부모님께, 배우자에게, 자녀들에게,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자주 감사의 표현을 해가면서 살아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장 큰 감사의 대상이신 하느님께 감사의 인사를 아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작은 정성에, 우리들의 작은 감사기도에, 우리의 작은 응답에 밤잠까지 잊고 행복해 하실 하느님을 생각하며 역경에서나 순풍에서나, 고통 중에서나 심각한 상처 가운데서도 언제나 감사의 삶, 기쁘게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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