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3일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어렸을 때 저는 눈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신체검사를 하면 양쪽 눈 모두 1.5 이상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중학생이 되면서 어느 날 갑자기 칠판의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멀리 있는 것이 잘 보이지 않아서 병원을 가니 ‘근시’라고 합니다. 그 뒤 저는 안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나이 마흔이 넘으면서 책의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글씨가 아른거리면서 집중해서 책을 읽기가 힘들었습니다. 중학생 때와 달리 이번에는 가까이 있는 것이 보이지 않아서 병원을 찾았습니다. 병원에서는 ‘노안’이라고 합니다. 그 뒤에 저는 돋보기를 하나 갖게 되었습니다.
가까운 것도 또 먼 것도 잘 보지 못하는 제 눈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잘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할까요? 사실 그리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낙천적이라서 그런 것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그보다는 ‘안경’이 있기 때문이지요. 지금 현재 쓰고 있는 안경만 있으면(지금 현재는 다초점렌즈 안경을 착용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것도 또 먼 것 역시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종종 있지 않습니까? 단순히 시력이 좋지 않아서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시련이라는 걸림돌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때로는 스스로 가지고 있는 욕심과 이기심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대로 판단하기도 힘듭니다. 그래서 커다란 걱정과 함께 절망에 빠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걱정할 필요도 또 절망에 빠져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힘듦 속에서 제대로 보고 판단할 수 있게 하는 주님이라는 안경을 착용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안경을 착용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주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제대로 볼 수도 또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포도밭에서 일하는 일꾼에 대한 비유 말씀을 하십니다. 이른 아침부터 일한 일꾼, 아홉 시부터 일한 일꾼, 열두 시와 오후 세 시부터 일한 일꾼,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후 다섯 시부터 일한 일꾼들이 있습니다. 이 포도밭의 주인은 이 일꾼들의 일당을 어떻게 계산해주었을까요? 일한 시간에 맞춰서 일당을 계산하는 것이 정의롭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주인은 모두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줍니다. 정의로울까요? 불의한 것일까요?
이 세상의 안경을 쓰고서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참으로 불의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안경을 쓰고서 바라본다면 정말로 정의로운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명의 예외 없이 모두가 주님의 은총을 받기를 바라는 주님의 사랑을 보여주시지요. 만약 조금밖에 일하지 않았다고 한 데나리온이 아닌, 반 데나리온만을 준다면 그와 가족은 굶게 됩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가 하루를 살 수 있는 금액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이 배부를 수 있기를 바라시는 주님이십니다.
세상의 안경이 아닌 주님의 안경을 써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의 사랑과 정의를 이해할 수 있으며, 우리 역시 주님의 뜻에 맞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안경을 점검해보셨으면 합니다.
오늘의 명언: 세상에는 천한 일이란 없다. 다만, 천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 있을 뿐이다. -링컨
정말로 필요할까? (파울로 코엘료, ‘마크툽’ 중에서)
어떤 전통에서는 제자들이 일 년에 하루 또는 필요한 경우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있는 물건들을 정리한다. 물건들을 일일이 손으로 만지면서 “나에게 이 물건이 정말로 필요할까?”라고 큰 소리로 묻는다.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을 꺼내들고 “언젠가 내가 이 책을 다시 읽을까?”를 묻는다. 간직해둔 기념품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이 물건에 얽힌 기억이 내게 여전히 중요한가?”라고 묻는다. 옷장을 열고 “내가 이 옷을 입지 않은 지 얼마나 되었지? 이 옷이 나에게 정말 필요한가?”라고 묻는다.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물건에는 고유한 에너지가 있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고인 물이 되어버리고, 그때부터 집은 곰팡이와 모기가 살기 좋은 곳이 된다. 물건들의 에너지가 자유롭게 발산되도록 해야 한다. 오래된 물건들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새로움이 차지할 공간이 없어진다.”
너무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어서 새로움이 차지할 공간을 만들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과감하게 정리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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