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호호글라라 2017. 9. 16. 11:38

2017년 9월 16일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성 아오스딩 성인은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행복해지고 싶은 자, 즉 행복을 찾는 자는 행복하지 않다.”

지금보다 더 나은 것을 바라거나, 아니면 적어도 지금 가진 것들을 잃어버릴까봐 걱정하면서 그것을 계속 가지고 싶어 하기 때문에 행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한다고 해서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술, 도박, 마약을 원하고 또 여기에 빠져 사는 사람을 행복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어린 자녀가 칼을 원한다고 해서 손에 쥐어준다면 과연 행복할까요? 물론 어린 자녀는 순간적으로 만족감을 얻을 수 있기는 하겠지만, 칼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서 다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한다고 해서, 또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변화하지 않는 것을 원하고 또 이를 얻어야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즉, 추구하는 대상이 영속적이어야 하고, 추구하는 대상과 필연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대상이 누가 되어야 할까요?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을 원하고 또한 함께 해야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과 함께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위대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라이프스토리를 다룬 수많은 영화들 속에는 그들의 ‘트레이닝’ 기간을 다루는 장면이 아주 짧게 나올 뿐입니다. 운동선수가 몸을 만드는 과정, 음악가가 재능을 단련하는 과정, 화가가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발견하기까지의 과정... 모두가 짧고 간단합니다. 왜 영화에는 그런 과정이 자세히 또 길게 나오지 않을까요? 이를 영화에 담기에는 너무 지루하고 별 특별함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사실 인생을 빛내게 한 것은 이 트레이닝 덕분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빛나는 인생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트레이닝이 필요합니다. 주님을 알기 위한 노력,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한 노력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오늘 복음을 통해 “‘주님, 주님!’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라고 꾸짖으셨던 것입니다. 말로만 주님을 부르는 행동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맞춰서 살아갈 수 있는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트레이닝이 전혀 되지 않은 사람은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강물이 들이닥치면 그 집은 그냥 무너져 버릴 수밖에 없다고 하지요. 실제로 주님의 뜻을 따르는 트레이닝이 전혀 되지 않는 사람은 쉽게 자신의 신앙을 버리는 것을 종종 목격합니다. 성당을 열심히 다녀도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신앙생활이 큰 짐으로만 느껴진다고 말합니다.

계속된 트레이닝이 필요한 우리입니다. 예수님도 공생활 전에 자그마치 30년이라는 트레이닝 기간이 있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늘의 명언: 나는 모든 작품마다 넘어졌던 경험이 있다. 최선을 다하면 넘어지게 되는 법이다.(강수진)

  

 

시간

그리스어에는 시간을 뜻하는 단어가 두 종류 있습니다. 그 하나는 ‘크로노스’(Chronos)이고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Kairos)입니다. ‘크로노스’는 자신의 자녀를 다 먹어 치웠던 원시시대 신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크로노스’는 우리를 잡아먹는 시간, 곧 우리가 쫓기듯 보내는 시간, 이런저런 일을 더 빨리 처리하도록 재촉 받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서 ‘카이로스’는 성경에서 특히 예수님께서 자주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첫 말씀을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때(Kairos)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카이로스는 해야 할 일로 가득한 시간이 아니라, 자신이 전적으로 현존하는 시간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언제나 현존하시는 분임을 기억할 때, 이 시간은 하느님의 친밀함으로 가득찬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시간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묵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잡아먹는 시간으로가 아니라, 우리를 살리는 시간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과의 친밀감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 안에서 참 기쁨의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