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장 주교님과 새신부의 평화의 인사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8년 1월 10일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는 고작 1.5%만 다르고, 개, 돼지, 고양이 같은 동물 역시 인간과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그 유일한 차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인간은 자기 삶을 스스로 변화시키고 자신의 공간을 가꾸어 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변화시킬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또한 내 주변을 가꾸어 나가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일까요? 동물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아닐까요?
종종 변화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곧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모습입니다. 내 주변이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는 것 역시 인간의 삶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왜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성과 감정을 주셨는지를 떠올려보십시오. 따라서 스스로가 끊임없이 변화를 위해 노력할 때 주님의 뜻을 따르는 이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꼬마 아이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교황님! 성체조배를 하면 저는 언제나 잡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때 교황님께서는 “괜찮다. 그래도 그분은 여전히 너를 바라보고 계시니까.”라고 답변하셨다고 합니다. 리지외의 성녀 소화 데레사께서는 “주님은 졸고 있는 사람도 사랑하신다.”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어렵고 힘들어도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이들을 원하시고 이들에게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열병은 ‘화병’이라고도 하지요. 이는 육체의 병만이 아니라 마음의 병까지고 고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시몬의 장모는 열병이 사라지자 곧바로 일어나 예수님과 그 일행을 위해 시중을 드는 변화된 모습을 보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께서는 우리 육체의 병만이 아니라 마음의 병까지도 치유해주십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어떠한 순간에서도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어떠한 순간에서도 기도하려는 마음입니다. 주님 스스로가 그 모범을 직접 보여주시지요. 그래서 전교여행으로 피곤한 상태에서도 늘 외딴 곳으로 나가시어 기도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기도에 대한 인상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느님께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사탄에게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으며, 이 기도를 통해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변화를 통해 참 인간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 문을 활짝 여십시오(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하느님이나 예수님께서 ‘언어’라는 것을 사용할 때는 딱 두 경우라고 합니다. 그 하나는 창조할 때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빛이 생겨라.” 하니까 빛이 생기지요. 이런 식으로 창조할 때에 ‘언어’를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치유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실 때 “일어나 걸어가라.”, “눈을 떠라.”라는 식으로 언어를 사용하십니다.
언어란 바로 창조와 치유를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우리가 구사하는 언어는 어떠했을까요? 남을 비방하고 상처주고 또 공격하는데 언어라는 것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언어는 새로운 힘을 주는 창조의 역할이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치유의 역할이 제 역할임을 기억해 보았으면 합니다.
제대로 된 언어의 사용, 이것이 바로 주님과 함께 하는 진정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어제 사제서품을 받은 새신부와 그 부모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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